작가 수업,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는다

By @applepost2/14/2018kr-pen


새해를 시작하며 한 다짐 중 가장 크고 막연한 목표는 많이 읽고 쓰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 큰 다짐 중 작은 다짐에는 스팀잇에서 글 읽고 쓰기가 있었다. 스팀잇이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고 이곳에서 나름대로 배우고 단련할 수 있을 것 같아 매일 빼먹지 않고 글을 써 보기로 했다. 그러고 당연히 금세 글은 매일 쓰지 않게 되었으며 열흘쯤 전부터는 한 번도 글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변명할 여지는 많다. 전에 하던 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게 가장 확실한 이유다. 한 번에 여러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팀잇에 글을 쓰기는커녕 접속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동안 내게 스팀잇에 글을 쓰는 것이 꽤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팀잇에 글을 올린다는 다짐은 깨지고 말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글을 쓰긴 했다. 아르바이트 시작 전에 읽은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 덕분이었다. (이 책은 @outis410님의 추천으로 읽게 됐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그녀가 이야기하는 글쓰기 훈련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에도 훈련은 지속했다. 그녀의 엄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도러시아 브랜디는 <작가 수업>에서 누구나 글쓰기에 재능을 지니고 있고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신념을 드러낸다. 그녀는 책에서 글의 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장인물에 어떻게 성격을 부여하는지, 문체는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로서 가져야 할 자세, 습관, 휴식은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등 작가의 생활 전반에 관해 이야기한다. 심지어 그녀는 타자기 사용(이 책은 미국에서 1934년에 발간됐다)이나 커피 중독에 대해서도 썼다. 

그런 도러시아 브랜디가 글쓰기 훈련에 대해서는 엄격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녀는 아침에 평소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다른 일을 하지 말고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 훈련이 익숙해지면 하루 중 시간대를 정해 그 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쓰라고 조언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하라고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엄숙한 경고의 말을 해두고 싶다. 즉 이 훈련에 거듭 실패할 경우 글쓰기를 포기하라.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보다 글쓰기에 대한 저항이 더 크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활력을 배출할 곳을 다른 데서 찾는 것이 좋다. 이른 아침에 글을 쓰는 훈련과 아무 때고 글을 쓰는 훈련은 글을 자유자재로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128p)  


정말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단호한 엄포였다. 그녀의 말대로, 거듭 실패할 경우엔 글쓰기를 반강제적으로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권위자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성격이어서 어떤 말들은 진리인 양 굳게 믿어 버린다. 그래서 잠깐 동안은, 이 책을 왜 읽기 시작한 걸까, 하고 후회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도러시아 브랜디의 엄포에 주눅이 들어 그 페이지를 편 채로 오랜 시간 멀뚱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글쓰기 훈련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쓰기 훈련만으로 하루가 벅차게 느껴졌기 때문에 스팀잇에서 글을 읽고 쓰는 일엔 소홀해지고 말았다. 글쓰기 훈련 시간에 쓴 글을 스팀잇에 올리면 되지 않냐며 꼼수를 부려 볼까 했지만, 도러시아 브랜디가 말한 글쓰기 훈련은 마음 가는 대로,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로 글을 쓰는 거였다. 그래야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서 글을 쓰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고 했다.    

평소 여덟시 반 정도에 눈을 떴는데 이를 여덟 시로 앞당겼다. 그리고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좌식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나는 주로 그날 꾼 꿈 얘기를 썼다. 꿈에는 몇 번, 평소에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던 남자 연예인들이 나타났다가 금세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쓰면서, 내가 꿈을 자주 꾸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평소에는 기억하지 못했을 뿐, 나는 꿈속에서 여러 일을 했다. 깨어나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그런 일들을 꿈속에선 잘도 했다. 꿈의 세계를 만들어낸 게 내 무의식이라니, 나도 이런 생생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아주 조금이나마 얻었다. 꿈을 잘 꾸는 게 자랑이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쓰는 것과 달리 정해진 때에 글을 쓰는 건 비교적 쉬웠다. 요즘 내 일상은 단조로워서 그 시간대에 척척, 책상 앞에 앉곤 했던 것이다. 나는 주로 과거의 기억에 관해 쓰거나 미래에 할 일에 관해 썼다. 무작정, 자기검열 없이 제법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도러시아 브랜디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쓰는 게 익숙해지면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훈련으로 나아가라고 했지만, 성미가 급한 나는 둘을 동시에 하고 있다. 두 훈련을 합해 하루에 글을 쓴 시간은 40~50분쯤 됐을까. 하루의 24분의 1도 차지하지 않는 이 훈련을 지속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지난 주말에는 훈련을 잠깐 멈추기도 했다. 토요일엔 동생을 보러 아침 일찍 다른 지역에 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일요일엔 늦게까지 자느라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다시 맞는 지난 월요일이 참 힘들었다. <작가 수업>이란 책은 내게 고된 시간의 문을 열어 주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작가는 물론 작가 친구도 될 수 없을 터였다. 

책은 참 따뜻했다. 그녀의 글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글쓰기에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쓰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니까 나는 아마 안 될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쯤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그리 되겠지. 무엇보다 <작가 수업>이 준 최고의 위로는 작가로서 글을 쓰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건 소중한 일이라는 조언이었다. 인용해 본다.   


글쓰기 기교는 시대와 작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글쓰기의 목적이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즉 실존적 개인으로서, 동시에 사회적 개인으로서 자신이 경험하고 이해하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이자 당위다. 이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정의할 때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따라서 굳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더라도 자신이 해석하는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담아내 동료 인간들과 공유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하며, 그 능력을 깨우쳤을 때 우리의 삶은 한결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바로 그 능력을 고양하는 데 목적이 있다. (293~284p)


어딘가에 적어 두고 싶은 구절이다. 나는 자격을 부여받고 싶어 했지, 그 일을 하려고 마음먹지 않았었다.

인용한 부분에서 ‘동료 인간’이란 말의 울림이 좋다. 많은 사람에게 동시대인 혹은 인간이란 이유로 동질감과 연민의 마음이 드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연장선에서 스팀잇에 내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는 일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떤 생각을 써도 그 글을 읽어 주는 몇몇 동료 인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수업’의 영문 제목은 ‘Becoming a writer’다. 어쩐지 영문 제목이 마음에 더 와닿는다. 수업은 듣는 것만으로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 번 작가가 되면 그 자체로 대단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바로 위 인용에서 “굳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더라도” 글을 쓰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 했는데 금세 또 굳이, 작가라는 타이틀이 갖고 싶어졌나 보다. 오독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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