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날 저녁

By @ab7b139/30/2018kr

2.jpg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쓴다.


음향 체킹을 하면서 피아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건반의 무게가 균일하지도 않고, 조율 후 옮겨져서 음정이 정확하지 않았다. 피아노 상태가 좋지 않아 다른 악기는 443Hz로 튜닝을 다시 해야 했다.

공연 순서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쭉 훑어보는 런을 돌았다. 그때가 유일하게 곡을 연주해볼 수 있는 시간인데, 그때 연주가 잘 안 됐다. 호흡과 감정이 중요한 곡인데 모니터가 안 됐고, 긴장한 탓이 몸이 많이 굳어 있었다. 바로 전 빠른 곡을 연주한 후라 감정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다. 원래도 공연 전에는 몸을 바들바들 떠는데, 리허설을 거의 망치다시피 하고는 패닉 상태가 왔다. 음식도 들어가지 않고, 혼자 몸이 퍼져 누워있었다.

한 번만 더 쳐보면 될 것 같은데, 언제나 부족한 리허설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순 없었다. 긴 대기시간 동안 가끔은 사람들과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정신없이 악보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는 공연이 있을까? 무대를 앞두고 틀리는 것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많지 않았던 합주를 걱정하면서, 대기실 복도를 오가며 만날 때마다 "우리 어떻게 해요?"라는 말을 인사처럼 건넸다. 입으로 소리를 내며 입합주를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손과 목을 푸는 이들도 있었다.


같은 공연에 선다는 이유만으로도 동료애를 느끼는 걸까? 처음 보는 사람과도 격의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또 "잘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 서로 잘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준다.

공연을 계기로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들과는 수다가 시작된다. 근황부터 시작해 앞으로 뭘 할 건지로 이어진다. 작업 같이하자는 얘기는 늘 나오는 말.


리허설이 끝나면 금방 공연이 다가온다. 공연 한 시간 전부터는 정신과 몸 둘 다 가눌 수가 없다. 떨려서 죽을 것 같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기도 하고, 호흡을 아주 깊고 깊고 깊게 내쉬고 내뱉기도 한다.

잠깐 눈 깜빡했을 뿐인데, 무대 위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 바로 앞 곡을 들으면서, 함께 대기하는 사람들과는 잘하자고, 잘할 수 있다고 손을 맞잡는다. 앞 곡이 끝나고, 무대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나의 동선이 맞물린다. 연주를 마친 몇몇 이들은 화이팅이라고 작게 말해준다. 손을 잡거나, 어깨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내겐 무대로 걸어가는 그 몇 초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죽어버릴 것 같고, 당장이고 토해버릴 것 같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공포의 시간이다. 그 순간을 마주하고, 피아노 위에 손을 올리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알아서 진행된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함께 무대를 마친 이들과 나누는 포옹... 대기실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 잘했다는 격려. 겨우 내쉬는 한숨.


공연 날엔 몇 번이고 울컥하게 된다. 무대 뒤에서 내 곡을 들었을 때. 사람들과 달뜬 마음으로 무대를 기다릴 때.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벽에 기대 그대로 주저앉을 때.


사람들과 회포를 나누기도 전에, 일 때문에 먼저 짐을 챙겨 나왔다. 수많은 얼굴이 떠오른다. 온통 아름다운 사람들.

글을 올리고 한숨 자고 싶지만, 내려가는 내내 밀린 작업을 해야 한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일이 있다. 이 모든 게 다 음악과 맞닿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어떤 연유로 행복해졌을까?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절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3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