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이후의 네트워크 모델 ?

By @a4r3/17/2018facebook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유명세’라는 보편적으로 보이는 가치를 기반으로 그 운영 시스템이 구축된 인터넷 사교 조직망인듯하다. 팔로우 장치는 누구에게나 친구 혹은 아는 사람 혹은 추종자들을 마음껏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하고, ‘좋아요’ 버튼과 같은 칭찬 장치는 자신의 유명세를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는 평등추천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이런 장치는 조직의 참여자들에게 그 조직망의 유명인이 되길 원하는 욕망을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던 듯하다. 실제로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출발한 조직은, 금세 참여자들을 늘려갔고, 위 두 사교 조직망의 가입자들은 자신의 유명세를 늘리려고 집착적으로 글과 이미지 등을 생산하는 임무에 충실히 임해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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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by KC

이렇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오늘날 거의 인터넷 세상의 인간 관계 네트워크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런 인터넷 조직망은 그 조직의 직조 초기에는, 기존 사회의 사교망의 작동 방식의 문제점을 극복한, 보다 평등한 방식으로 관계짜기의 가능성을 참여자에게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구시대의 라벨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항해서, 사람들이 사유와 토론 그 자체의 내용과 과정에 집중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구축해갈 가능성이, 이 시기에 새로운 방식으로 열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물결이 아직은 기류가 더 강한 기존의 물결에 휩싸여버리는 일은 어렵지 않게 일어나곤 한다. 기존 사회의 유명인들은 그들이 이미 보유한 유명세를 통해 손쉽게 새로운 네트워크의 강자로 재등장하며, 새롭게 열린 시간과 공간의 기회들을 잠식하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발빠르게 포착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만들어 추종자를 불린 사람들이 여기에 더해졌을 뿐, 결국 혹에 혹이 더해진 상황, 결국 낡은 가치는 변태의 과정을 거쳐 유지될뿐인... 새로운 물결 뒤에 피할 수 없이 밀려드는 반물결 앞에서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은 지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은 이제 이것을 실시간으로 보다 적나라하게 체감해야 하는 것이다. 유명세가 부족한 누군가가 공을 들여 만든 창작물 및 연구 작업 등은 유명세를 가진 사람들이 그냥 밥한끼 먹었다는 정보에 휙 쓸려나날 운명이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체념해야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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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by KC

유명세가 부족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도 조직망에 남길 원하고, 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이 조직의 작동 문법을 마스터하는 것이다. 여러 원리 중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자신의 실제 모습이 어떻든, 이미 유명해져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전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공한 모습을 연출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을 부풀린다. 유명하지 않아도 유명한 척하고, 몰라도 아는척하며 자신을 전시하고, 칭찬을 얻기 위해 칭찬을 하고, 칭찬을 얻기 위해 한 칭찬을 받아 먹고 자란다. 이 사이클에 발을 들여 놓으면 자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조차 인식 못할 정도로 부풀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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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by KC

사회는 이런 보상 규율을 내면화하면서 길들여진 구성원들이 만들어갈 자아의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그 후유증에 대한 대책을 찾아야할 필요가 있을 단계에 이미 이르렀는지 모른다. 게다가 이와같은 사교 조직망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모순적 특성때문에 이미 사태는 더 심각할 지도 모른다. 개인의 일상의 사소한 자랑거리, 그러니까 조금은 무리해서 꾸며대더라도, 자신도 꽤 매력있는 사람이라고 좀 알아달라고 징징대는, 인정을 얻고 싶은 욕망에서 뱉어내는 말 또는 이쁘게 보이고 싶은 모습들을 전시하는 행위들과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어렵고 심각한 일들에 대한 소식과 호소들이 거의 동시에 뒤섞이며 전파를 타는 현상이 가져오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 둘의 경계 설정은 점점더 불분명해지고, 별 문제 없이 눈감아줘도 괜찮아 보이는듯한 개인의 ‘사소’한 기만들이 보다 큰 단위의 기만들로 확장되고 연결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 웃다가 울거나, 꾸짓다가 부끄러워하는 자아는 점점더 이 전환을 빠르고 동시에 이루어내야 한다. 몇몇 사기업이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제공한 공적 공간을 표방한 애매한 장소에, 이렇게 이 시대의 설교와 고백이 이루어지는 성소가 자리잡게 되었고, 이 두 행위를 동시에 시행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자아를 품은 현대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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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by 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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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대체할 시스템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찾고 있었습니다. 얼마전 스팀잇을 발견했고, 이 새로운 시스템이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릴듯한 시스템들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일부를 대체하거나 혹은 어떤 새로운 시스템의 작동 원리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여기에 새로운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첫글을 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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