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상가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이론들 가운데 '희생양(le bouc émissaire)'이라는 이론이 있다.
요약하면, 한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의 욕망들이 충돌하여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르면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이 욕망을 해소할 필요가 발생하는데, 이때 구성원들은 무고하나 복수할 힘이 없을 한 사람을 골라 희생시킴으로써 공동의 욕망을 분출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찾는다는 것이다. 희생양 이론의 예는 종교, 신화나 역사 속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희생양들은 공동체를 지킨 존재로 신격화되거나 미화되어 남기도 했다). 19세기 드레퓌스 사건도 한 예로 들 수 있다.
현대 사회에도 희생양들은 존재하고, 그 종류는 더 세분화되고 성격도 더 복잡해졌으리라.
만약 공동체의 폭력에 내몰린 개인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 원인이 개인의 광기인지 집단이 만들어 낸 광기인지 제 3자가 정확히 판가름하기 어렵겠지만 아마 십중팔구 개인의 실성으로 결론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결론 역시 공동체에 의해 내려지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는 거인의 발 밑에서 개인은 철저하게 무력하다.
또 만약 공동체 내에 지도자격 구성원(들)이 있고 그가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각각 역할을 분배하는 공동체가 있다고 할 때, 그리고 그 중 한 구성원에게 희생양 '역할'을 맡겼다고 할 때, 이 경우 역시 희생양 이론의 다른 사례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지도자와 나머지 구성원들은 그 희생양을 보다 암묵적으로 은밀하게 향유한다.
지난 역사 속에서와 다른 점 또 하나는, 현대 사회의 희생양들은 더 이상 시간이 지나도 미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영 진실이 밝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희생양에게 보다 치밀하게 낙인을 찍어 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