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피드백

By @megaspore9/22/2017kr

예전에 어떠한 한 분야를 평생을 연구하고
그것을 논문이나 책으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에 저렇게 관심이 많을까 참으로 신기하고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보기엔 그닥 흥미로운 분야도 아닌데 그것에 평생을 바쳐 알아내려 하고 끝없이 연구하는 그런 태도가 참으로 멋져 보였던 듯 하다.

그런데 나도 요즘은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

그것은 나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사람은 과연 과거의 영향을 벗어나 새롭게 살 수 있는 것인지.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사는 방법은 과연 따로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하고 주위 사람을 사랑하며 충만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내가 궁금해하는 이런 것들이 과연 가능하긴 한 것인지.
인간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운명이라는 것은 정말 어느 정도는 정해진 것인지.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내 나이 삼십대 중반을 어느 새 넘어섰고 내 기억에 한 십년 가까이는 마음 속 방황을 하며 정처없이 내가 왜 살고 있는 것인지를 헤맸던 것 같다.
(주위 사람은 그저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은 나는 의미를 찾지 못 했기에 무엇을 할 의욕을 못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방황하는 십년 가까운 세월동안 그저 게으르고 모든 일에 심드렁하고 예민한 나를 받아준 영원한 나의 남의 편과 가족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만약 그때 그러한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 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어제는 왜 나는 밤에 자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항상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그리도 여기저기 가상세계를 떠돌아 다니는지 나의 행동의 원인을 궁금해하다가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나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고 싶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가치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내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나의 존재 가치를
타인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태어났는데 나는 어떤 한 여자, 한 남자(부모님)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무엇을 해도 나는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확신이 들며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그 사람의 평생을 좌지우지할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뱃속에서부터 모두에게 환영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커서 알았지만 내가 태아 7개월 시절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나를 지우라고 하셨고 나의 어머니는 알겠다고 말만 하고 결국은 본인의 의지로 나를 낳으셨다.

태어난지 얼마 안돼 두분은 이혼하셨고 돈을 벌어 두 딸을 키워야 하는 어머니로 인해 나의 어린 시절은 홀로 있었던 시절이 많았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너무 조용해 바보 같다는 이유로 남자아이의 괴롭힘을 당했다.

초등 고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다시 재결합을 하신 어머니의 결정으로 그때부터 나의 대학 시절까지 아버지로 인해 내 지금의 항상 긴장하고 남의 눈치를 보고 불안해하고 약간은 고통에 이상하게 둔감한 듯 보이는 딴 세상에 사는 듯한 멍한 성격은 그때 아버지와 살면서 자기 보호의 일환으로 형성된 듯 보인다.

대학 시절 부모님의 두번째 이혼으로 나는 그때부터 중국 유학을 떠나 지금의 사랑하는 그를 만나게 되고 나의 이상한 성격으로 인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십년 이상의 세월동안 사실 알고보면 착한 그를 너무나 많이 괴롭혔던 듯 하다.
(지금 내가 행복해지니 나는 이제서야 그를 괴롭히지 않는 것 같다..)

나의 존재 가치.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첫번째로는 부모님)을 통해 존재 가치를 확인하게 되는데 나는 아버지의 부재, 매일 바빠 얼굴을 보기 힘든 엄마,나이 차이로 인해 항상 같이 있으며 교류할 수 없었던 언니라는 환경으로 인해 나의 존재 가치를 찾지 못 했던게 아닐까 싶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저학년 때 너무 조용해 바보같다는 이유로 남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나는 그때 아마도 “너는 쓸모없는 사람. 바보같은 아이.”라는 피드백을 타인을 통해 처음 강렬하게 느끼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어진 초등 고학년 때부터의 부모님의 재결합으로 다시 종종 사소한 이유로 아버지의 분풀이 대상으로 매를 맞았고 나는 그때 또 타인(아버지)에게
“너는 맞아야 되는 아이. 잘 하는 것도 없는 아이. 항상 지적받아야 하는 아이”
라는 피드백을 두번째로 강렬하게 느낀듯 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야자 시간이 너무나 좋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무표정이었다.
집에 가면 나는 또 내 존재가치를 확인해야 하니까.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

집에 가면 항상 우리 모녀가 부족하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아버지가 있었고 눈에 시퍼런 멍이 들고도 다음날 아침 가게로 출근하는 어머니,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아버지 덕분에 MT도 제대로 못 가지만, 몰래몰래 자신의 사랑을 만들어 가고 있던 언니.

나는 그때 내가 왜 여기 있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조용한 성격으로 ‘꿀먹은 벙어리’라는 별명을 얻었고 나는 꿀먹은 벙어리답게 공부에만 나름 집중하려 했지만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나는 내내 행복하지 못 해서였는지 그냥 머리가 나빴던 것인지 딱히 놀지도 않았는데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 하고 경기도 소재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 타인에게 얻은 나의 피드백은
‘꿀 먹은 벙어리’.

그것은 딱히 기분 좋은 피드백은 아니었고
‘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는 나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대학 때는 나의 의지로 성격을 바꾸었다.
어두운 성격이 아닌 먼저 다가가는 밝은 성격으로.
그래서 나름 친구도 많이 생겼고 동아리 활동도 나름 활발히 했고 나는 대학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때 처음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지 않았나 싶다.

부모님의 두번째 이혼후 대학을 자퇴하고 중국 유학을 떠나 평생을 나와 함께 같이 할 지금의 그를 만났고 나는 십년이상 그를 정신적으로 괴롭혀 왔다.
그 당시에는 내가 그 때문에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해왔으나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나의 문제였다.

그는 알고보면 참 순수한 사람이다.
나는 순수하지 못 하고 항상 사람의 진의를 의심했다.
지금은 나도 그처럼 순수해지고 싶다.

남편을 만난 후 내가 얻게 된 피드백은
‘나는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진실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 라는 것이었다.

남편의 직설적인 성격은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계속해서 진실하게 사랑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점점 모질게 대할수록 그에게 버림받을 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림 받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유학 후 돌아와 작은 무역회사에 취업을 해 커미션 업무를 맡았는데, 여기서 얻은 피드백은 ‘중국어는 쓸만 하지만 회사 업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한번 ‘나는 역시 그닥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내 존재가치를 확인했고 그 뒤에 어머니의 강요 아닌 강요로 남편과 내 예상보다 좀 더 빠른 28살에 결혼을 해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중국에 살고 있다.

중국에 와서는 내가 한국어 가르치는 직업을 하면 좋겠다 생각해 사이버 외국어 대학 한국어 학부에 편입해 들어갔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 아주 약간은 그래도 나의 자존감이 올라갔던 것 같다. 공부하는 그 순간은 ‘역시 나는 공부는 아니야..’ 하면서 나의 자존감이 마구 떨어졌지만
목표를 이루고 나서 그래도 ‘나도 하면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조금은 올라갔던 것 같다.

자격증 취득 후 홍콩에서 몇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계속 학원 한국어 강사 생활을 해왔고 한국어 강사 시절에는 몇몇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만난 선생님 중에 가장 좋은 선생님”
이라는 최고의 피드백을 받아 자존감이 잠시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다 비자 취득을 위하여(남편 회사에서 치사하게 딱 남편만 비자를 해주었다) 홍콩 대학원 중국어교육학과를 들어갔고 온통 중국인에 외국인은 달랑 나 하나인 그 환경에서 나는 또 ‘역시 나는 안 돼. 공부도 안 되고 사교 능력도 꽝이야. 나는 정말 여기서 있으나 마나한 존재야. 오히려 방해가 되는 존재야.’ 라며 혼자 또 자책을 했으나

결국은 간신히 턱걸이로 졸업학점을 넘겨 석사모를 당당히 쓰게 된 그 날.

나는 대학원을 다니며 한없이 무너졌던 나의 자존감이 또 조금은 올라갔던 것 같다.

대학원 졸업식 후 한달이 지나 지금의 나의 예쁜 천사 딸아이가 결혼 6년만에 우리 부부를 찾아왔고
지금은 어제부로 두돌을 맞이하였다.

딸아이를 낳으면서 육아를 도와주신다고 올라오신 시어머니.
그 과정에서 나는 또 “집안은 돼지우리에 요리도 잼뱅인 주부로서 쓸모없는 여자” 라는 피드백을 꾸준히 받았고
뭐 지금은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집안일 요리에 잼뱅인 것은 사실이니까)

딸아이가 돌을 넘기고 올초에 홍콩에 있는 한국 물류회사에 취업을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서 작은 무역회사 이후로 처음 정규직 직장생활) 했는데 그 곳에서 얻은 피드백은

“당신은 월급 받는 것(나는 거의 최저임금으로 들어갔다)에 비해 하나도 도움이 못 되고 있어. 계속 실수만 하잖아.”

라는 피드백을 매일같이 받았고

그러한 피드백을 매일같이 받던 어느날 남편과 산책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죽고 싶다…” 라는 말이 그냥 무표정한 내 입에서 나왔다.

평소에 무덤덤한 나의 남편은 그때 조금 놀란듯 했으며
나에게 ‘당신은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매일 주던 그 회사를 (사실은 상사 한명을) 출근 두달반만에 떠나게 되었고 사직서를 내고 며칠 후에 둘째 아이 임신사실을 알게 되어 지금은 출산을 한달여로 앞두고 있다.

둘째는 남자아인데 초음파 사진을 보니 지 누나하고 똑같이 생겨서 너무 신기하다.
사랑하는 그와 외모와 성별까지 같은 내 뱃속의 아이.
한달 후가 무지 기대된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낳은 아이라서 소중하다기보다 그와 닮아 나오는 아이들이라서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자존감이 여전히 없나보다.
내가 낳은 아이라서 소중해야 되는데 그를 닮아 나와 소중한걸 보면 말이다.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나를 사랑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느끼고 싶은 것도 물론 있지만 내가 행복해져야 하는 이유는 내가 행복해져야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사실을 나는 삼십대 중반이 되서야 이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위대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나처럼 살면서 그닥 좋지 않은 피드백을 원치 않았지만 많이 받았던 사람들은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또 피드백을 받으면 된다.

예전에는 자기 계발서를 많이 보았고 노오력 하면 나도 무슨 일이든 하면 되고 그러면 비로소 나도 자존감이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꽃도 모든 꽃이 다 예쁘지만 다 각자 다른 모양으로 예쁘듯이 사람도 각자 다른 모양으로 예쁜 것 같다.

나는 국화인데 굳이 장미를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장미는 장미대로 화려한 멋이.
국화는 국화대로 수수하고 우아한 멋이 있다.

각자의 모양을 아주 잘 살려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멋드러지게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는 이 아픈 과정도
사실은 내가 국화인지 장미인지 내가 어떤 모양으로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가시로 찔리는 조금은 따가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난 우리는 더 강해지고
우리가 어떠한 모양을 갖고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뇌하게 되어
우리는 결과적으로 더 좋아진다.

두려워하지 말자.

두려움도 그저 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은 ‘나’ 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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